육체의 허기보다 마음의 허기가 더 괴롭다
<백설공주>에서 백설공주는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긴다. 동화를 읽어보면 백설공주는 처음에는 살인청부업자인 사냥꾼에게 죽을 뻔하다가 사냥꾼이 그녀를 가엽게 여긴 덕분에 겨우 살아난다. 바로 이 장면 때문에 사실 백설공주를 제일 사랑한 건 왕자도 난쟁이도 아닌 사냥꾼이라는 설이 떠도는 것이다. 백설공주의 심장 대신 멧돼지의 심장을 가져가 왕비에게 바진 사냥꾼은 백설공주를 위해 유일하게 목숨을 건 인물이니 말이다. 그렇게 얻은 목숨, 백설공주는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하는데 도통 그렇지가 않다. 낯선 사람에게 문을 쉽게 열어주기 때문이다. 난쟁이 집에 얹혀사는 동안 백설공주는 허리를 꽉 조이는 레이스 끈과 독이 묻은 빗 때문에 거의 죽다 살아난다. 이 과정에서 난쟁이들은 백설공주에게 "절대 낯선 사람에게 문을 열어 주지 마세요"라고 여러 번 신신당부한다. 하지만 배 걸 공주는 낯선 사람에게 자꾸만 문을 열어 준다. 그리고 결국 왕비의 꼬임에 넘어가 독사과를 먹고 깊은 잠에 빠지고 만다. 도대체 왜 백설공주는 자꾸만 문을 열어 주었을까?
그것은 아마 '외로움' 때문일지도 모른다. 한번 생각해 보자. 백설공주는 일곱 난쟁이들의 집에 종일 혼자 있었다. 그러니 분명 외로웠을 것이다. 그래서 낯선 사람이 찾아오면 반가움에 문을 열어 준 것일 수 있다. 누군가와의 '접촉'이 필요해서 말이다. 접촉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는 심리학 실험이 하나 있다. 바로 위스콘신대학의 해리 할로우가 실시한 '접촉 위안' 실험이다. 그가 이 실험을 하게 된 계기는 다음과 같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수많은 전쟁고아가 발생했다. 이탈리아의 한 보육원은 이러한 아이들을 맡아서 키웠는데, 이 보육원은 국가의 지원을 받는 보육원으로 민간 교육원보다 시설이나 식단의 영양 상태가 훨씬 좋았다. 게다가 위생을 중요시해서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격리해서 키웠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나타났다. 환경이 열악한 민간 보육원에 있는 아이들보다 이 보육원에 있는 아이들이 사망률이 훨씬 더 높았다. 게다가 생존한 아이들도 신체적, 정신적으로 발달이 부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할로우는 원숭이를 이용해서 실험 하나를 진행했다. 그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새끼 원숭이를 어미로부터 격리했다. 그리고 새끼 원숭이에게 '철사로 된 엄마'와 '헝겊으로 된 엄마'를 만들어 주었다. 이때 철사로 된 엄마는 몸통을 철사로 만들어서 촉감은 별로 좋지 않았다. 하지만 가슴에 우유병을 달아 새끼 원숭이가 배고플 때 먹을 수 있도록 하였다. 반면 헝겊으로 만든 엄마는 철사로 된 엄마와 다르게 촉감이 따뜻했다. 하지만 우유병이 없어서 새끼 원숭이에게 먹을 것을 제공해 줄 수는 없었다. 얼핏 생각해 보면 생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먹을 것이므로, 새끼 원숭이는 당연히 철사로 만든 엄마에게 매달릴 것 같았다. 하지만 실험 결과는 모두의 예상을 비껴갔다. 새끼 원숭이는 철사로 만든 엄마가 아니라 헝겊으로 만든 엄마를 온종일 부둥켜안고 있었다. 심지어 배가 고플 때도 새끼 원숭이는 헝겊으로 만든 엄마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대신 철사로 만든 엄마의 가슴에 있는 우유병으로 입만 가져가 허기를 채웠다. 더 놀라운 것은 새끼 원숭이에게 매우 큰소리를 들려주거나 무서운 기계로 위협을 가할 때였다. 그때마다 새끼 원숭이는 헝겊으로 만든 엄마에게 달려가 매달렸다. 이 실험을 진행하기 전인 1950년대까지는 아기가 엄마에게 애착을 갖게 되는 이유가 '자신의 배고픔을 엄마가 해결해 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를 '찬장 이론'이라고 한다. 찬장 이론이란 아이가 엄마를 우유 창고와 같은 개념으로 이해한다는 의미에서 생긴 이름으로, 아기가 엄마를 단순히 생존하기 위해서 사랑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할로우의 새끼 원숭이 실험을 통해 천장 이론의 한계가 밝혀졌다. 더불어 모든 것이 풍족하고 청결한 보육원에서 아이들이 죽어간 이유도 알 수 있었다. 바로 '애정이 담긴 접촉의 부재' 때문이었다.
누군가와 접촉하고 누군가를 쓰다듬거나 안아 주는 행위는 정말 중요하다.
하지만 이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닌다. 그래서 이를 위한 캠페인까지 있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프리 허그' 운동이다. 프리 허그 운동 방법은 간단하다. 어떤 사람이 'Free Hug'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기다리다가 지나가는 사람이 포옹을 청하면 안아 주는 것이다. 이 캠페인은 제이슨 헌터라는 미국인에 의해 처음 시작되었다. 제이슨은 어머니의 장례식에 오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네 어머니가 나에게 해 준 포옹이 참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다"라고 말하는 것을 발견했다. 이에 영감을 받은 그리 프리 허그 운동을 시작했다. 이를 후안 만이라는 호주인이 유튜브에 동영상을 올리면서 이 운동은 전 세계로 급속히 퍼져나갔다. 다시 백설공주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백설공주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돼서 어머니를 여의었다. 어머니의 따뜻한 품을 느낄 새도 없이 말이다. 또 백설공주의 아버지는 한 나라의 왕이어서 딸을 직접 보살피는 시간이 많지 않았을 것이다. 시녀들도 신분의 차이 때문에 백설공주를 편하게 대하기 어려웠을 걷다. 마치 이탈리아의 보육원처럼 백설공주에게는 청결한 환경과 풍부한 음식만 제공된 것이다. 그러다가 새로 맞이하게 된 새엄마는 백설공주를 시기해서 죽이려 한다. 이를 피해 백설공주는 일곱 난쟁이들의 집으로 도망쳤지만, 난쟁이들은 아침 일찍 일하러 나갔다가 밤늦게 돌아온다. 그동안 백설공주는 온종일 집에 혼자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 상황에서 누군가 자신을 애타게 찾는다면 기분이 어떨까? 한번 백설공주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나에게 말을 걸어 주고, 나와 접촉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지금 문밖에 서 있다. 과연 모른 척할 수 있을까? 아마 힘들 것이다. 어린 시절에 다른 사람으로부터 충분한 접촉을 받지 못하면 어른이 되어서도 그런 접촉을 갈망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럼 왜 우리는 신체적 접촉을 할 때 마음의 안정감을 느끼는 걸까? 그에 대한 답은 생물학에서 찾을 수 있다. 사람의 피부에는 'C-촉각 신경섬유'라는 것이 있다. 이 신경 섬유는 신체적 접촉을 할 때 가장 활성화되는 데, 이 정보가 뇌섬엽으로 전달되면 엔도르핀이 분비되고 그 엔도르핀을 통해 우리의 기분이 좋아져 마음이 안정된다. 이러한 이유로 심리학에서는 접촉을 단순히 '접촉'이라 하지 않고 '접촉 위안'이라고 한다.
따라서 백설공주가 자꾸 낯선 사람에게 문을 열어 준 것은 바보여서가 아니다. 타인으로부터 접촉 위안을 받고 싶었던 백설공주의 필사적인 노력이라 볼 수 있다.
이 글은 책 '심리학이 이토록 재밌을 줄이야' 을 요약,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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